잠자는 새의 눈물을 나방이 먹는다
Moths Drink the Tears of Sleeping Birds
JANGOH HONG
Moths Drink the Tears of Sleeping Birds
JANGOH HONG
옵스큐라(obscura)의 두 번째 프로젝트로 홍장오의 개인전 ‘잠자는 새의 눈물을 나방이 먹는다(Moths drink the tears of sleeping birds)’가 2019년 8월 14일부터 10월 6일까지 성북동 북정마을 옵스큐라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홍장오 작가가 새롭게 시도한 투명하고 반사되는 조형물들을 선보인다. 루시다(lucida, 밝은 방)의 정점을 보여주는 윈도우 공간의 작품들과 옵스큐라(어두운 방)에서 빛을 내는 내부 공간의 작업을 만나 볼 수 있다. 윈도우 관람은 매일 6시부터 22시까지이고 내부 관람은 매주 월, 수에 가능하다. 전시 관련 행사로 9월 28일(토)에 홍장오 작가의 도큐멘터리 & 리서치(documentary & research) 자료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홍장오 작가가 새롭게 시도한 투명하고 반사되는 조형물들을 선보인다. 루시다(lucida, 밝은 방)의 정점을 보여주는 윈도우 공간의 작품들과 옵스큐라(어두운 방)에서 빛을 내는 내부 공간의 작업을 만나 볼 수 있다. 윈도우 관람은 매일 6시부터 22시까지이고 내부 관람은 매주 월, 수에 가능하다. 전시 관련 행사로 9월 28일(토)에 홍장오 작가의 도큐멘터리 & 리서치(documentary & research) 자료를 선보인다.
‘obscura’ shows obscurity but moths know bird’s tears.
낙엽과 잔가지가 뒤섞인 땅을 밟는 걸음걸음에 따라붙는 소리, 동시에 발끝에 전해지는 뭉근하면서도 딱딱한 촉감, 새·곤충·보이지 않는 동물들 그리고 식물들이 내는 크고 작은 소리, 스치는 바람, 빛과 그림자의 교차로 일렁이는 깊고 깊은 숲.
홍장오의 이번 작업은 미지의 숲, 잘 알려지지 않은(in our obscurity)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보는 듯하다. 본래 숲은 객관적인 사실(fact)로 채워진 곳이다. 그런데 모든 사실을 명확하게 알지 못함(無知)으로 인해 숲은 인간에게 낯섦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주관적 장소가 되었다. 이것으로부터 이야기(허구, fiction)는 생산된다. 홍장오의 숲 역시도 이런 이중적 상황으로서의 사실과 이야기의 충돌이 나타나고 있다. 그의 숲은 투명하고 반짝이면서도 가볍고 묵직한 것의 조합으로 재현된다. 유리들이 부드럽게 부딪치는 소리, 일렁이는 빛의 반사, 스치고 피해가며 나아가는 걸음 속에서 우리는 잠자는 새의 머리에 앉아 새의 눈물을 마시는 나방을 만난다. 인공적으로 재현되고 상상으로 찬 허구의 공간에서 저 새와 나방 그리고 그들의 행위는 유일한 사실이다.1) 가장 사실 같지 않은 것을 사실로 밝힘으로써 공간의 낯섦은 증대된다. 주관적 상상으로 (어쩌면 무지함으로) 채워진 공간에서 사실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공간에 혼동과 이야기를 더할 뿐이다. 사실과 허구의 충돌은 작가의 지난 작업에서도 자주 사용되던 서사 방식이다.
홍장오는 그동안 낯선 공간과 정물들, 이를테면 (그의 지난 개인전 타이틀이기도 한) “우주전경”, “우주정물”, “외계대사관”, “미확인비행존재”들로 새로운 공간을 제시해왔다. 그는 잘 알지 못하는 세계나 공간으로 관객을 데려다 놓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잘 알고 있지 않은’ 것을 느끼도록 하였다. 하지만 실상 그 표현 방식이나 구성의 이면에서는 ‘어디선가 본듯함’, ‘익숙함’의 코드가 내재되어 있었다. 그의 작업에서 이러한 이중적 코드―사실과 허구, 새로움과 익숙함―의 충돌은 작품 구성에 내재된 하나의 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결국 창출해낸 공간은 우주도 숲도 아니다. 상상의 지점을 어느 단어에 넣어 시작하느냐의 문제일 뿐이고 최종 목적지는 전혀 다른 곳이 될 수 있다.2) 작가는 상상의 목적지를 선정하는 것에 있어서 몇 가지의 연상 장치만 심어 놓았을 뿐 여정과 마지막 도착지는 감상자 개인의 몫―감상―즐거움이다.
미술 작품의 감상은 이미지적 즐거움 찾기와 서사(텍스트)적 즐거움 찾기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이 두 가지의 범주 안에서 작품 감상의 경로를 탐색하게 된다. 미술이라는 것이 시각을 기본적인 전달수단으로 하기에 시각과 관련된 감상이 주를 이룬다. 이에 비해 ‘소리’는 미술 감상에 있어서 주요 요소로 부각되지 않는다. 음악이나 음향을 직접적으로 사용한 작업은 소리가 감상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지만, 시각 매체만으로 전달하는 작업에서 청각적인 상상은 쉽게 연결되지 않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홍장오 작가의 전시는 시각적, 서사적 코드뿐만 아니라 청각적 요소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정 음악을 틀거나 오브제 자체에서 음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작품에서 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 상상의 소리는 불쾌하지 않은 가벼운 마찰의 소리, 빛에 반응하는 소리이다. 이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목적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그의 이전 작업에서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소리라는 요소가 부각되는 이유가 새롭게 사용된 투명하고 반사되는 재질 때문인지 이전과 스타일이 변한 전시 제목 때문인지 아니면 두 가지 요소가 함께 가져온 결과인지는 앞으로의 작업 진행을 지켜보며 결론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잠자는 새의 눈물을 나방이 먹는다(Moths drink the tears of sleeping birds)’ 전시는 홍장오 작가에게 있어서 기존의 서술 방식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상상력을 확장하는 실험적 시도였다. 어휘와 소재의 변화는 전시 코드의 배열을 다르게 변형시켰고 이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와 상황 연출을 만들어냈다. 변화가 가져온 신선함이 상당하기에 성공적인 시작점에 위치했다고 본다.
밝고 어두운 방, 아무것도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공간 옵스큐라에서 결국 유일한 사실은 나방만이 새의 눈물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obscura’ shows obscurity but moths know bird’s tears. ■박우진(옵스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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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셔날지오그라피(nationalgeographic)의 기사. 검색일 20190810.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animals/2018/09/moths-drink-birds-tears-amazon-animals/
2)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제안한 상상력 코드는 전시 제목, “잠자는 새의 눈물을 나방이 먹는다”이다.
낙엽과 잔가지가 뒤섞인 땅을 밟는 걸음걸음에 따라붙는 소리, 동시에 발끝에 전해지는 뭉근하면서도 딱딱한 촉감, 새·곤충·보이지 않는 동물들 그리고 식물들이 내는 크고 작은 소리, 스치는 바람, 빛과 그림자의 교차로 일렁이는 깊고 깊은 숲.
홍장오의 이번 작업은 미지의 숲, 잘 알려지지 않은(in our obscurity)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보는 듯하다. 본래 숲은 객관적인 사실(fact)로 채워진 곳이다. 그런데 모든 사실을 명확하게 알지 못함(無知)으로 인해 숲은 인간에게 낯섦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주관적 장소가 되었다. 이것으로부터 이야기(허구, fiction)는 생산된다. 홍장오의 숲 역시도 이런 이중적 상황으로서의 사실과 이야기의 충돌이 나타나고 있다. 그의 숲은 투명하고 반짝이면서도 가볍고 묵직한 것의 조합으로 재현된다. 유리들이 부드럽게 부딪치는 소리, 일렁이는 빛의 반사, 스치고 피해가며 나아가는 걸음 속에서 우리는 잠자는 새의 머리에 앉아 새의 눈물을 마시는 나방을 만난다. 인공적으로 재현되고 상상으로 찬 허구의 공간에서 저 새와 나방 그리고 그들의 행위는 유일한 사실이다.1) 가장 사실 같지 않은 것을 사실로 밝힘으로써 공간의 낯섦은 증대된다. 주관적 상상으로 (어쩌면 무지함으로) 채워진 공간에서 사실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공간에 혼동과 이야기를 더할 뿐이다. 사실과 허구의 충돌은 작가의 지난 작업에서도 자주 사용되던 서사 방식이다.
홍장오는 그동안 낯선 공간과 정물들, 이를테면 (그의 지난 개인전 타이틀이기도 한) “우주전경”, “우주정물”, “외계대사관”, “미확인비행존재”들로 새로운 공간을 제시해왔다. 그는 잘 알지 못하는 세계나 공간으로 관객을 데려다 놓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잘 알고 있지 않은’ 것을 느끼도록 하였다. 하지만 실상 그 표현 방식이나 구성의 이면에서는 ‘어디선가 본듯함’, ‘익숙함’의 코드가 내재되어 있었다. 그의 작업에서 이러한 이중적 코드―사실과 허구, 새로움과 익숙함―의 충돌은 작품 구성에 내재된 하나의 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결국 창출해낸 공간은 우주도 숲도 아니다. 상상의 지점을 어느 단어에 넣어 시작하느냐의 문제일 뿐이고 최종 목적지는 전혀 다른 곳이 될 수 있다.2) 작가는 상상의 목적지를 선정하는 것에 있어서 몇 가지의 연상 장치만 심어 놓았을 뿐 여정과 마지막 도착지는 감상자 개인의 몫―감상―즐거움이다.
미술 작품의 감상은 이미지적 즐거움 찾기와 서사(텍스트)적 즐거움 찾기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이 두 가지의 범주 안에서 작품 감상의 경로를 탐색하게 된다. 미술이라는 것이 시각을 기본적인 전달수단으로 하기에 시각과 관련된 감상이 주를 이룬다. 이에 비해 ‘소리’는 미술 감상에 있어서 주요 요소로 부각되지 않는다. 음악이나 음향을 직접적으로 사용한 작업은 소리가 감상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지만, 시각 매체만으로 전달하는 작업에서 청각적인 상상은 쉽게 연결되지 않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홍장오 작가의 전시는 시각적, 서사적 코드뿐만 아니라 청각적 요소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정 음악을 틀거나 오브제 자체에서 음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작품에서 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 상상의 소리는 불쾌하지 않은 가벼운 마찰의 소리, 빛에 반응하는 소리이다. 이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목적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그의 이전 작업에서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소리라는 요소가 부각되는 이유가 새롭게 사용된 투명하고 반사되는 재질 때문인지 이전과 스타일이 변한 전시 제목 때문인지 아니면 두 가지 요소가 함께 가져온 결과인지는 앞으로의 작업 진행을 지켜보며 결론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잠자는 새의 눈물을 나방이 먹는다(Moths drink the tears of sleeping birds)’ 전시는 홍장오 작가에게 있어서 기존의 서술 방식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상상력을 확장하는 실험적 시도였다. 어휘와 소재의 변화는 전시 코드의 배열을 다르게 변형시켰고 이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와 상황 연출을 만들어냈다. 변화가 가져온 신선함이 상당하기에 성공적인 시작점에 위치했다고 본다.
밝고 어두운 방, 아무것도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공간 옵스큐라에서 결국 유일한 사실은 나방만이 새의 눈물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obscura’ shows obscurity but moths know bird’s tears. ■박우진(옵스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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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셔날지오그라피(nationalgeographic)의 기사. 검색일 20190810.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animals/2018/09/moths-drink-birds-tears-amazon-animals/
2)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제안한 상상력 코드는 전시 제목, “잠자는 새의 눈물을 나방이 먹는다”이다.
홍장오 작가는 중앙대 조소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 순수미술 MFA를 마쳤다. 경기도미술관, Tenderpixel갤러리, 아마도예술공간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 및 그룹전에 참여 하였으며, 다양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공간 연출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낭뜨에 위치한 APO33 (2010), 몽인 아트스페이스 (2014), 경기창작센터 (2018)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