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binet of Curiosities>
정물화는 수세기에 걸쳐 발전 했지만 본격적으로 독립된 장르가 된건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자연에 대한 탐구가 깊어지면서 부터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물화는 대상이 단편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것을 둘러 싼 공간과 서사 등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이런 요소들과 함께 그림 안으로 투영이 이루어질 때 창작자가 설계한 시공간에 온전히 몰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1.
Cabinet of Curiosities(호기심의 캐비넷)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박물관의 모토가 된 컬렉션 문화현상이다. 실제로는 캐비넷에 국한되지 않고 방 전체에 진열된 컬렉션인 경우도 많았다. 중요한건 수집품들이 라벨링을 통해 분류되어 진열했다는 점이다. 이 공간에는 동물의 뼈, 곤충, 식물, 광물, 조개 같은 자연물부터 망원경, 지도 같은 과학도구와 이집트 미라 조각, 아시아의 도자기 등 기이한 물건까지 다양한 것들이 수집되어있다.
중세에 만들어진 잔 데브뢰의 성모자상(Virgin and Child of jeanne d'sEvreux)은 하단의 에나멜 장식장 내에 머리카락, 옷 조각, 성모 마리아의 모유 등이 들어 있다고 한다. 중세시절 성인의 손가락 뼈 유물을 부적처럼 지녔던 것과 결을 같이한다. 후담에 이들을 모아보니 10개가 아닌 30개가 넘었다고 한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궁정의 어머니로서 중요한 인물임을 강조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의 모유 같은 성물을 포함했다는 스토리를 부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은 믿고싶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베네딕 위닉스(Jan Weenix)의 정물화에는 사냥한 동물들의 사체가 등장한다. 화려하면서도 비극적인 연출이 인상적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동물을 실제 관찰하며 정물화에 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늘어진 동물 사체는 장시간 관찰이 가능하며 그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사냥하고 수집한 전리품들로 장식 되어있다. 그림을 보고 있자면 마치 그의 호기심의 캐비넷을 감상하는 듯하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정물들 역시 화가가 매료된 소재들로 채워져 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사소한 것부터 도통 취향을 이해하기 힘든 기이한 것까지 화가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이 호기심의 캐비넷은 화가의 컬렉션인과 동시에 그것들이 선별된 경위나 사연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들이 사실이거나 허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형성된 세계관 안에 존재하는 그림 안에는 가치를 가지는 실체가 된다. 앞서 성모 상의 이야기처럼 작가가 믿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2.
“자세히 봐야 이쁘다. 오래봐야 사랑스럽다.“
나태주의 시구절처럼 마음을 넉넉히 주지 않았던 사소한 것을 유심히 관찰을 할 때 감상의 변화가 생기는데 이는 낯선 체험과 비슷하다.
이를테면 내게 있어 문어는 이전까지 식재료로만 접했고 혹은 도안이나 다큐멘터리과 같이 미디어에서 본 것외 직접 온전한 생물의 형태로 마주할 일이 없었다. 생물 문어를 화구박스 위에 다른 소품들과 같이 올려놓았을 때 이전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유려한 자태와 이질적인 질감에 매료되었다. 이러한 낯선 체험은 익숙하지 않은것에 대한 혐오와 호기심이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이 낯선 존재와 마주한 경험을 미지와의 조우나 20세기 SF장르에 묘사된 지구 밖 외계인을 모습을 동시에 떠올려 보았다. 이순간 테이블 위에 생명체는 이전에 알던 것과 다른 인상으로 다가왔다. 대상을 수집한 경위를 비롯 앞으로 벌어질 일까지 허구적 상상력인 충만한 환영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으로 대상을 재현할 때 수집가가 믿고 싶은 이야기을 담고 있는 호기심의 캐비넷처럼 그 속의 일부가 되어 그림 안에서 존재하게 된다. 서사를 부여 받은 그것은 더이상 이전에 알던 존재가 아닌 것이다.
3.
중세 동물도감 베스티아리(Bestiary)에선 실제 동물이나 상상속 동물을 중세인의 신앙적 세계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삽화가가 미처 접하지 못한 동물들의 묘사를 보면 수집한 정보를 언어 자체를 그대로 조합하여 대상의 실제 모습과 괴리가 있을뿐만 아니라 우스깡스러운 우화적인 모습으로 묘사했다.
예를들면 비버의 묘사에 있었어도 물갈퀴가 있는 발, 생선의 꼬리, 개의 얼굴을 단어 그대로 접목한 표현하였다. 습성에 대한 기술도 비버의 고환이 정력제로 인기가 있어 사냥꾼들이 노렸는데 위기를 느낀 비버는 스스로 고환을 물어뜯어 버리고 도망을 가거나 거세한 비버는 직접 제거된 부위를 사냥꾼에 보여주어 위기를 탈출하는 등의 이야기도 굉장히 흥미롭다.
15세기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의 <세속적 쾌락정원>에서 보이는 동물을 모티브로 하는 크리쳐들은 마치 베스티아리 도감처럼 익숙한 동물 도상들의 조합을 통해 기괴한 장면을 연출한다. 인간의 몸통을 부리 속으로 집어 넣는 새의 눈 빛은 묘한 감성을 자아낸다.
위의 것들은 실제와 다른 허구적 상상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타인에게 들은 이야기 일수도 스스로 생각해낸 것일 수도 있다. 대상을 재현하는 동안 창작자의 신념이 오롯이 작품에 깃들게 된다.
4.
정물화는 내게 있어 다양한 회화적 실험의 장이다.
익숙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대상을 비틀어 주시하면 투박하거나 혹은 화려하거나 기이한 매력에 매료된다. 이 매력적인 보고 있자면 영감의 대상이 된 소재들을 캔버스라는 캐비넷에 수집하고 싶은 창작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오류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상상력은 소중하다. 일상에서도 잠시도 생각을 멈출 순 없다. 길을 걸을 때도 미래에 대한 예측과 과거의 자취에 대한 복기를 하게 된다. 도로에 싱크홀이 생기거나 공사현장의 기중기가 내쪽으로 쓰러지는 등 위험을 예측하기 위한 기재의 과몰입부터 이세계로 연결되는 지하철 승강장, 출퇴근길 다른 승객의 뒷통수에 자라나 차량 내부를 뒤덮는 잎줄기 같은 상상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망상은 마치 생활 속 깨어있는 내내에도 꿈을 꾸는 듯 끊이질 않는다. 이는 기면증과는 다르다.
유년시절 집에는 오소리나 꿩 같은 박제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꿩의 박제가 목을 부풀리며 움직이는 환영을 본 적이 있다. 몇 차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일렁이는 꿩의 실루엣은 살아있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날개를 펼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해왔다. 그 뒤 불꺼진 장소에서는 시선을 피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공포를 느끼는 것은 생존본능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한 것이 천적에 대해 위기를 감지하고 먹잇감을 계획을 세워 사냥을 하는 인간사유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공포와 혐오는 더욱 상상력을 자극한다. 뭍짐승보다 조류나 어패류를 대할 때 더욱 쉽게 느낀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 내륙인이 생선 같은 바다 생물을 즐기지 못하고 징그러워 했다. 차가운 촉각과 질감, 생김새에서 주는 이질감 때문에 지구 밖 생명체를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되곤 한다. 로스웰 괴담이 있기 전까지 오랜시간 화성인 같은 외계인은 연체동물의 형상으로 그려졌다.
화구박스와 공구박스를 쌓아 올리고 배치하는 과정에 탑이나 섬의 형상을 대입하여 상상했는데 특히 아놀드 뵈클린의 <죽음의 섬>을 떠올려 보았다. 쓸쓸하고 고요한 이 섬의 형상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소재들을 배치하거나 결합하여 새로운 외형을 형성하는 것에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대상을 그 본 쓰임새에 달리 이색적인 접근 방식이다. <랑데뷰 : 트루 서바이버, 2024>에서는 이를 응용해서 소품들의 결합을 통해 독립된 개체 7개의 형상을 만들어 진열했다. 각기 자아가 있는 모습으로 비춰지길 기대했다. 또한 이 결합은 굉장히 연역하다. 금방이라도 붕괴 될 수 있는 아슬아슬함과 엉성한 조합이 주는 불안정한 모습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익숙한 도상들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이번 베스티아리 시리즈도 그러한 맥락이다. 앞서 사물들을 응용했다면 이번 시리즈에서는 동물들의 조합을 통해 흥미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려한다. 그 동물도감에선 그들이 믿었던 조물주가 창조한 생명체는 완벽하기에 실제세계의 대상과의 검증이 중요하지 않다. 신앙심으로 빗어낸 짐승들은 종교적 세계관 안에서 믿음으로 존재한다.
관찰하는 대상으로부터 파생한 다양한 상상이 곧 영감이 되고 서사를 부여했을 때 나의 컬렉션의 일부가 된다. 익숙하지만 생경한 장면이라는 모순적인 말이 내그림의 일부가 되었으면 한다.
5.
<꽃을 토해내는 새발의 비단잉어>
"달빛을 담은 동쪽 연못에, 기이한 형상의 잉어가 산다. 붉은 빛의 비단을 두르고 있는 형상의 이 물고기는 새의 다리를 가졌다. 달이 찬 깊은 새벽에 뭍으로 나와 오랫동안 소리없이 운다.
한참 뒤 울음이 그칠 때쯤 그것은 쓸개즙 대신 꽃을 토한다. 소리없는 울음 끝에는 슬픔으로 빛나는 마지막 절규 대신 흐느끼는 입가에서 달빛을 닮은 창백한 꽃 망울이 피어난다.
어떤이들은 이 잉어가 짝을 찾지 못해 외로움에 사무친 울음이라고 한다. 전설에는 뭍으로 올러올 수 있는 다리를 선물 받았으나 고통을 표현할 수 없는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고통 속에서 피어난 꽃들을 연못 위에 흘려보내며, 이루어지지 못한 침묵의 기도처럼 조용히 흩뿌린다.”
◼️이정웅
정물화는 수세기에 걸쳐 발전 했지만 본격적으로 독립된 장르가 된건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자연에 대한 탐구가 깊어지면서 부터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물화는 대상이 단편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것을 둘러 싼 공간과 서사 등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이런 요소들과 함께 그림 안으로 투영이 이루어질 때 창작자가 설계한 시공간에 온전히 몰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1.
Cabinet of Curiosities(호기심의 캐비넷)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박물관의 모토가 된 컬렉션 문화현상이다. 실제로는 캐비넷에 국한되지 않고 방 전체에 진열된 컬렉션인 경우도 많았다. 중요한건 수집품들이 라벨링을 통해 분류되어 진열했다는 점이다. 이 공간에는 동물의 뼈, 곤충, 식물, 광물, 조개 같은 자연물부터 망원경, 지도 같은 과학도구와 이집트 미라 조각, 아시아의 도자기 등 기이한 물건까지 다양한 것들이 수집되어있다.
중세에 만들어진 잔 데브뢰의 성모자상(Virgin and Child of jeanne d'sEvreux)은 하단의 에나멜 장식장 내에 머리카락, 옷 조각, 성모 마리아의 모유 등이 들어 있다고 한다. 중세시절 성인의 손가락 뼈 유물을 부적처럼 지녔던 것과 결을 같이한다. 후담에 이들을 모아보니 10개가 아닌 30개가 넘었다고 한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궁정의 어머니로서 중요한 인물임을 강조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의 모유 같은 성물을 포함했다는 스토리를 부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은 믿고싶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베네딕 위닉스(Jan Weenix)의 정물화에는 사냥한 동물들의 사체가 등장한다. 화려하면서도 비극적인 연출이 인상적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동물을 실제 관찰하며 정물화에 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늘어진 동물 사체는 장시간 관찰이 가능하며 그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사냥하고 수집한 전리품들로 장식 되어있다. 그림을 보고 있자면 마치 그의 호기심의 캐비넷을 감상하는 듯하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정물들 역시 화가가 매료된 소재들로 채워져 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사소한 것부터 도통 취향을 이해하기 힘든 기이한 것까지 화가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이 호기심의 캐비넷은 화가의 컬렉션인과 동시에 그것들이 선별된 경위나 사연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들이 사실이거나 허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형성된 세계관 안에 존재하는 그림 안에는 가치를 가지는 실체가 된다. 앞서 성모 상의 이야기처럼 작가가 믿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2.
“자세히 봐야 이쁘다. 오래봐야 사랑스럽다.“
나태주의 시구절처럼 마음을 넉넉히 주지 않았던 사소한 것을 유심히 관찰을 할 때 감상의 변화가 생기는데 이는 낯선 체험과 비슷하다.
이를테면 내게 있어 문어는 이전까지 식재료로만 접했고 혹은 도안이나 다큐멘터리과 같이 미디어에서 본 것외 직접 온전한 생물의 형태로 마주할 일이 없었다. 생물 문어를 화구박스 위에 다른 소품들과 같이 올려놓았을 때 이전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유려한 자태와 이질적인 질감에 매료되었다. 이러한 낯선 체험은 익숙하지 않은것에 대한 혐오와 호기심이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이 낯선 존재와 마주한 경험을 미지와의 조우나 20세기 SF장르에 묘사된 지구 밖 외계인을 모습을 동시에 떠올려 보았다. 이순간 테이블 위에 생명체는 이전에 알던 것과 다른 인상으로 다가왔다. 대상을 수집한 경위를 비롯 앞으로 벌어질 일까지 허구적 상상력인 충만한 환영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으로 대상을 재현할 때 수집가가 믿고 싶은 이야기을 담고 있는 호기심의 캐비넷처럼 그 속의 일부가 되어 그림 안에서 존재하게 된다. 서사를 부여 받은 그것은 더이상 이전에 알던 존재가 아닌 것이다.
3.
중세 동물도감 베스티아리(Bestiary)에선 실제 동물이나 상상속 동물을 중세인의 신앙적 세계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삽화가가 미처 접하지 못한 동물들의 묘사를 보면 수집한 정보를 언어 자체를 그대로 조합하여 대상의 실제 모습과 괴리가 있을뿐만 아니라 우스깡스러운 우화적인 모습으로 묘사했다.
예를들면 비버의 묘사에 있었어도 물갈퀴가 있는 발, 생선의 꼬리, 개의 얼굴을 단어 그대로 접목한 표현하였다. 습성에 대한 기술도 비버의 고환이 정력제로 인기가 있어 사냥꾼들이 노렸는데 위기를 느낀 비버는 스스로 고환을 물어뜯어 버리고 도망을 가거나 거세한 비버는 직접 제거된 부위를 사냥꾼에 보여주어 위기를 탈출하는 등의 이야기도 굉장히 흥미롭다.
15세기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의 <세속적 쾌락정원>에서 보이는 동물을 모티브로 하는 크리쳐들은 마치 베스티아리 도감처럼 익숙한 동물 도상들의 조합을 통해 기괴한 장면을 연출한다. 인간의 몸통을 부리 속으로 집어 넣는 새의 눈 빛은 묘한 감성을 자아낸다.
위의 것들은 실제와 다른 허구적 상상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타인에게 들은 이야기 일수도 스스로 생각해낸 것일 수도 있다. 대상을 재현하는 동안 창작자의 신념이 오롯이 작품에 깃들게 된다.
4.
정물화는 내게 있어 다양한 회화적 실험의 장이다.
익숙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대상을 비틀어 주시하면 투박하거나 혹은 화려하거나 기이한 매력에 매료된다. 이 매력적인 보고 있자면 영감의 대상이 된 소재들을 캔버스라는 캐비넷에 수집하고 싶은 창작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오류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상상력은 소중하다. 일상에서도 잠시도 생각을 멈출 순 없다. 길을 걸을 때도 미래에 대한 예측과 과거의 자취에 대한 복기를 하게 된다. 도로에 싱크홀이 생기거나 공사현장의 기중기가 내쪽으로 쓰러지는 등 위험을 예측하기 위한 기재의 과몰입부터 이세계로 연결되는 지하철 승강장, 출퇴근길 다른 승객의 뒷통수에 자라나 차량 내부를 뒤덮는 잎줄기 같은 상상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망상은 마치 생활 속 깨어있는 내내에도 꿈을 꾸는 듯 끊이질 않는다. 이는 기면증과는 다르다.
유년시절 집에는 오소리나 꿩 같은 박제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꿩의 박제가 목을 부풀리며 움직이는 환영을 본 적이 있다. 몇 차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일렁이는 꿩의 실루엣은 살아있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날개를 펼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해왔다. 그 뒤 불꺼진 장소에서는 시선을 피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공포를 느끼는 것은 생존본능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한 것이 천적에 대해 위기를 감지하고 먹잇감을 계획을 세워 사냥을 하는 인간사유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공포와 혐오는 더욱 상상력을 자극한다. 뭍짐승보다 조류나 어패류를 대할 때 더욱 쉽게 느낀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 내륙인이 생선 같은 바다 생물을 즐기지 못하고 징그러워 했다. 차가운 촉각과 질감, 생김새에서 주는 이질감 때문에 지구 밖 생명체를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되곤 한다. 로스웰 괴담이 있기 전까지 오랜시간 화성인 같은 외계인은 연체동물의 형상으로 그려졌다.
화구박스와 공구박스를 쌓아 올리고 배치하는 과정에 탑이나 섬의 형상을 대입하여 상상했는데 특히 아놀드 뵈클린의 <죽음의 섬>을 떠올려 보았다. 쓸쓸하고 고요한 이 섬의 형상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소재들을 배치하거나 결합하여 새로운 외형을 형성하는 것에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대상을 그 본 쓰임새에 달리 이색적인 접근 방식이다. <랑데뷰 : 트루 서바이버, 2024>에서는 이를 응용해서 소품들의 결합을 통해 독립된 개체 7개의 형상을 만들어 진열했다. 각기 자아가 있는 모습으로 비춰지길 기대했다. 또한 이 결합은 굉장히 연역하다. 금방이라도 붕괴 될 수 있는 아슬아슬함과 엉성한 조합이 주는 불안정한 모습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익숙한 도상들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이번 베스티아리 시리즈도 그러한 맥락이다. 앞서 사물들을 응용했다면 이번 시리즈에서는 동물들의 조합을 통해 흥미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려한다. 그 동물도감에선 그들이 믿었던 조물주가 창조한 생명체는 완벽하기에 실제세계의 대상과의 검증이 중요하지 않다. 신앙심으로 빗어낸 짐승들은 종교적 세계관 안에서 믿음으로 존재한다.
관찰하는 대상으로부터 파생한 다양한 상상이 곧 영감이 되고 서사를 부여했을 때 나의 컬렉션의 일부가 된다. 익숙하지만 생경한 장면이라는 모순적인 말이 내그림의 일부가 되었으면 한다.
5.
<꽃을 토해내는 새발의 비단잉어>
"달빛을 담은 동쪽 연못에, 기이한 형상의 잉어가 산다. 붉은 빛의 비단을 두르고 있는 형상의 이 물고기는 새의 다리를 가졌다. 달이 찬 깊은 새벽에 뭍으로 나와 오랫동안 소리없이 운다.
한참 뒤 울음이 그칠 때쯤 그것은 쓸개즙 대신 꽃을 토한다. 소리없는 울음 끝에는 슬픔으로 빛나는 마지막 절규 대신 흐느끼는 입가에서 달빛을 닮은 창백한 꽃 망울이 피어난다.
어떤이들은 이 잉어가 짝을 찾지 못해 외로움에 사무친 울음이라고 한다. 전설에는 뭍으로 올러올 수 있는 다리를 선물 받았으나 고통을 표현할 수 없는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고통 속에서 피어난 꽃들을 연못 위에 흘려보내며, 이루어지지 못한 침묵의 기도처럼 조용히 흩뿌린다.”
◼️이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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